[기자수첩] 10월의 마지막 밤을 당당히 맞이할 수 있는가
사회적 참사와 중대재해 사고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도록 관심‧실천‧연대가 필요
임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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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15:33 | 최종 수정 2023.11.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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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경기신문 임석규 기자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이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즐겨 듣곤 한다. 이 곡의 마지막 가사는 ‘언젠가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 적혀있다. 흔히 이 곡은 10월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이 곡은 사실상 이태원 참사의 추모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에서 통제되지 않은 병목현상이 발생해 159명 사망‧196명 부상(경상 165명‧중상 31)명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숨진 83명은 경기도민이었으며, 평택시민 3명과 화성시민 1명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다. 해당 지자체들은 숨진 시민들을 추모하고 관내 밀집 지역 대상 안전 확보 등 유사 재해 방지에 힘썼다. 시민들은 분향소로 찾아와 자신의 가족을 잃은 것처럼 애도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겠다는 추모를 했다.
그로부터 1주기가 된 지난 29일, 일요일 오후 5시부터 서울특별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개최한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열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유가족‧생존자‧각 정당 인사들은 참사 당시와 그 이후에도 책임자로서 있어야 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혀줄 독립적 수사기구 설치가 골자인 특별법도 국회에서 멈춰있으며, 이태원 참사 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알려진 ‘청주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지난 7월 15일에 일어났다.
해당 참사는 지난 201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 등과 함께 ‘사회적 참사’로 불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또는 훼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숨을 잃었으며, 참사 이후 정부와 해당 기업 등으로부터 책임자 처벌이 아직도 온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가 잊혀힌 오늘날의 사회를 향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책임을 제대로 져야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 경고를 가볍게 여겼기에 사회적 참사는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본사 취재 범위인 경기남부(평택‧안성‧화성‧오산)에서는 중대재해로 연결된 사고가 일어났었다. 벌써 평택 SPL 평택공장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해당 공장에서 일했던 故 박선빈씨(당시 23세)는 지난해 10월 15일 아침 6시 18분쯤 소스 배합작업 도중 신체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 공장의 근무 매뉴얼에 해당 작업 시 2인 1조로 일하도록 지시했지만 사고 당시 박 씨 혼자 일했던 점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지난 2021년 4월 22일 오후 4시 10분쯤 평택항 내 컨테이너 하역장에서 오픈형 컨테이너의 바닥을 정리하던 故 이선호씨(당시 23세)는 300㎏의 컨테이너 날개가 쓰러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시 외국인 노동자 1명만 있었을 뿐 안전관리자가 없었던 안전의 실종으로 일어난 끔찍한 참사였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2022년 1월 13일 1심에서 사고와 관련된 작업 책임자 등에게 모두 집행유예‧㈜동방 법인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해 노동계와 지역사회에서 ‘솜방망이 처벌’이라 비판했다.
안성에서도 지난해 10월 원곡면에 있는 KY로지스 저온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 타설 중 거푸집 붕괴로 추락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올해 10월 11일에 또 일죽면에 있는 KCC 방초2지구 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도 콘크리트 보와 고소작업대가 충돌해 50대 노동자가 숨졌다. 화성에서는 지난해 9월 향남읍 소재 파일약품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 1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했던 사고가 있었다.
이처럼 중대재해사고는 지역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아직도 기업이나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는 소식이 언론‧법조계에서 들려오지 않는 실정이다. 또 재벌 등 경제계는 다치거나 죽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는커녕 매해 수많은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 및 정·경 유착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등을 계속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본과 권력의 힘 앞에 일상을 살아가는 노동자‧시민들이 힘없이 쓰러져가는 것이다.
10월 마지막 날 저녁의 공기가 제법 시리게 피부를 스친다. 그러나 단순히 한기(寒氣)에 찬 바람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자본과 속도에 밀려 일상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한기(恨氣) 역시 우리의 뺨을 스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사라져간 이들의 상처를 가벼이 여긴 대가로 이미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더욱 큰 아픔을 겪고 있지 않던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회적 참사 및 중대재해 사고 소식에 더는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지역사회의 기반이 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위험이 일어날 수 있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안전을 위한 보완 조치를 취하며, 시민들에게는 안전과 생명존중 인식을 심을 수 있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민사회계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안전을 경시하는 자본과 권력을 감시‧견제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결단코 돈이나 힘이 아닌 사람이라는 그 고유의 가치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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